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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시간 09:00 - 18:00경애왕
시조 및 신라선원 > 경애왕경애왕은 경명왕의 동생이니 휘는 위응이요 왕위에 계신지는 3년이요 릉은 배일산 삼릉의 좌록(左麓) 묘좌이다.
○ 원년 乙酉에 석씨를 왕비로 봉하다. 이 해에 고울부(高鬱付)의 장군 능문(能文)이 신라에 배반하여 고려에 항복하니 고려왕이 고울부(高鬱付)는 왕도와 가깝다해서 위로해서 돌려보내고 그 부하 매근의 무리만 머물러 있게 하다.
○ 3년 丁亥 10월에 견훤이 왕도 가까이 몰려드니 왕이 고려에 급보를 전하니 고려왕이 공훤등 1만 병력을 보내서 구원하려 하였으나 고려병이 도착하기 전에 견훤이 왕도에 쳐들어 왔다. 그때 왕은 비빈(妃嬪)과 종척들과 함께 포석정에서 술을 마시고 즐기다가 견훤이 쳐들어옴을 듣고 왕과 왕비가 도망쳐서 이궁(離宮)에 돌아오니 시종(侍從 - 모시는 신하)과 궁녀와 영관들은 모두 포로가 되고 견훤병은 약탈을 자행하여 공사의 재물을 거의 빼앗고 왕궁에 들어가서 왕을 찾아내어 군중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하고 부하를 시켜 빈첩들을 간음하게 하고 왕의 동생 효렴과 재신(宰臣 - 지위높은 벼슬아치)을 포로하고 자녀 백공과 병기와 보화를 탈취해 가거늘 고려왕이 사신을 보내서 조위하고 친히 정병을 거느리고 公山의 동숲에 맞아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여 견훤병의 포위가 심히 위급하므로 고려의 대장 신숭겸이 왕을 위해 싸우다 죽으매 왕은 이틈을 타서 간신히 몸을 빠져나와 도망하였다. 이에 신라의 왕비는 왕의 고종제(姑從弟)김부를 세워 왕으로 삼으니 이분이 경순왕이다. 왕은 군신들과 함께 경애왕의 시체를 서궁에 모시어 통곡하고 경애(景哀)라 시호를 올리고 삼릉의 좌록(左麓 - 왼쪽 산기슭)卯坐에 장사하다. 대아손 검교상서 좌복야 박술홍은 비분(悲憤)함을 이기지 못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서 평생을 숨어살며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 8년 乙未에 경순왕이 국력이 약하고 외로워서 고려에게 나라를 양도하니 신라가 드디어 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