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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및 신라선원 > 남해왕제2대 남해왕기(南解王紀)
남해왕은 시조왕의 맏아들이시니 처음에 차차웅(次次雄)이라 하셨다. 재위는 20년이요 수(壽)는 74세시다. 능(陵)은 시조왕릉과 같은 곳 묘좌(卯坐)이다. 왕비는 운제왕후 김씨(雲帝王后 金氏)니 능은 방산(方山) 子坐이다. 다음왕비는 아루왕후(阿婁王后) 昔氏니 능은?
○ 원년 乙丑에 왕비 김씨를 봉하여 운제왕후를 삼으시고 다음왕비 석씨는 아루왕후라 하다.
○ 2년 丙寅 정월에 시조왕의 사당을 세우고 四時로 친히 제사하실세 왕의 누이동생 아로(阿老)로 제사를 주장하게 하다.
○ 4년 무진에 왕께서 석탈해(昔脫解)의 어질다는 말을 듣고 맏딸로 그의 아내를 삼게하시다. 상고하건대 탈해는 파사나국(婆裟那國) 사람이라 그 나라 임금 함달파(含達婆)가 여국왕녀(余國王女)를 왕비로 삼았는데 아기를 밴지 7년만에 큰 알을 낳으니 왕이 「왕이 사라믕로 알을 낳은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버림이 마땅하다」하니 왕비가 명주로 알을 싸서 궤속에 넣어 배에 싣고 추수하기를 「마음대로 인연 있는 곳에 무사히 가거라.」하였다. 처음에 금관국 김해(今官國 金海)에가니 해변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서 건지지 않으므로 전전해서 진한에 오니 늙은 할머니가 세끼로 끌어 당겨서 궤를 열고 보니 아기가 있으므로 거두어서 길렀는데 장성하였다. 궤가 처음올때 까치가 따라와서 지저귀므로 까치의 조(鳥)를 떼어 내고 昔으로 성을 하고 궤를 풀고나왔다해서 탈해(脫解)로 이름하다 탈해가 얼굴이 빼어나고 명랑하여 지식이 뛰어나서 나무하고 고기 잡아서 할머니를 잘 봉양하니 할머니가「너 모양이 뛰어났으니 공부해서 입신양명(立身揚名)할지어다.」라고 하니 탈해가 학문에 더욱 힘쓰고 겸하여 지리에 정통하여 월성에 거주하였다. 다음해 기사(己巳)에 마한이 망하다.
○ 10년 갑술(甲戌)에 일본병이 국경을 넘어 침범하거늘 육부병을 출동시켜 막아내다. 낙랑이 허점을 틈타서 급히 금성(金城)을 공격하다가 밤에 유성이 적의 진영에 떨어지니 적이 두려워하여 알천(閼川)위에 타진하여 돌무덤 2000을 쌓아놓고 돌아가니 육부병(六部兵)이 알천까지 따라갔다가 동무덤을 보고 적의 수가 많은 것을 알고 추격을 중지하다.
○ 15년 기묘(己卯)에 북명인(北溟人)이 밭을 갈다가 예왕(穢王)의 인(印)을 얻어와서 올리다. 상고하건데 고구려의 대무신왕(大武神王)이 북으로 동부여(東扶餘)를 칠때에 길에서 북명(北溟) 사람 괴유(怪由)를 만났다 하니 북명은 국내성 부근의 땅일 것이다.
○ 20년 갑신(甲申) 9월에 왕께서 훙서(薨逝)하시니 태자(太子) 유리(儒理)가 왕위에 오르다. 왕이 임종에 태자 유리와 탈해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죽은 후에 박(朴)씨와 석(昔)씨 두 성씨 중에 나이가 많은 사람이 왕위(王位)를 이으라 하시고 돌아가셨는데 유리가 탈해는 덕망이 있다하여 왕위를 사양하니 탈해가 말하기를 "신기대보(神器大寶- 왕위를 말함)는 용렬한 사람의 감당할 바 아니다. 내가 등기로는 어진 사람은 이빨이 많다하고 떡을 물어서 시험한즉 유리의 이빨이 더 많은 지라 드디어 왕위에 올라 남해왕을 선릉(先陵-始祖陵을 말함)의 영역 안에 장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