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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시간 09:00 - 18:00유리왕
시조 및 신라선원 > 유리왕유리왕은 남해왕의 태자이시니 처음으로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이라 일컫는다.왕위에 계신지 30년이요 수(壽)는? 선릉(先陵) 국내 묘좌(卯坐)이며 왕비는 명선왕후 김씨(明宣王后 金氏)요 능은 동산자좌(東山子坐)이다.
○ 원년 을유(乙酉)에 김씨를 봉하여 명선왕후(明宣王后)라 하고 처음으로 쟁기와 수레를 만들고 친히 시조왕 사당(始祖廟)에 제사 지내고 죄인을 석방하다.
○ 4년 무자(戊子) 10월에 왕이 나라안을 순시 하실세 늙은 할머니가 헐벗고 굶주려서 죽을 지경인 것을 보고 말하기를 내가 미력한 사람으로 왕위에 있으면서 백성을 잘 기르지 못하여 늙은이와 어린이가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은 나의 죄라하고 곧 옷과 양식을 주게하고 유사(有司)에게 명령하여 홀아비와 홀어미와 고아와 노병자로서 자활(自活)할 수 없는 백성을 위문하여 의복과 식량을 주어서 기르게 하니 이웃나라 백성들이 왕의 어진 정치를 듣고 귀화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해에 처음으로 도솔가(兜率家)를 지어 노래하니 이것이 가악의 시초이다. 어름 저장(貯藏)하는 빙고(氷庫)를 축조하다. 상고하건데 주나라의 문왕과 한나라의 문제가 늙은이를 기르는 것을 첫 정사(政事)로 삼고 홀아비와 홀어미와 고아를 먼저 돌보았으니 왕의 어진 정치가 주문왕(周文王) 한문제(漢文帝)에게 비길만하다.
○ 8년 임진(壬辰) 봄에 왕께서 육부(六部)의 이름을 고치고 성(姓)을 주시니 이씨(李氏) 최씨(崔氏) 손씨(孫氏) 정씨(鄭氏) 배씨(裵氏) 설씨(薛氏)의 육성(六姓)이다. 육부를 반으로 나누어 둘로나누어 왕녀 두 사람으로 각각 그 부내(部內)의 여자(女子)를 인솔하여 7월 기망(旣望 - 십육일)부터 매일 육부의 뜰에 일찍 모여서 밤이 늦도록 삼을 삼게하여 팔월 보름날에 이르러 성적을 심사하여 진편은 음식을 마련하고 이긴편에 치하하게 하여 서로 노래하고 즐겨서 온갖 놀이를 하였는데 이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진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 회소(會蘇 會蘇)하였는데 二음절이 슬프고 아담하여 뒷사람이 그 소리에 맞춰 노래를 지은 것이 회소곡(會蘇曲)이다. 벼슬에 17등급을 두었는데 첫째는 이벌손(伊伐飡) 둘째는 이척손(伊尺飡) 셋째는 잡손(잡飡)이요 넷째는 파진손(波珍飡)이요. 다섯째는 대아손(大阿飡) 여섯째는 아손(阿飡) 일곱째는 일길손(一吉飡)이요 여덟째는 사손(沙飡) 아홉째는 급대손(級代飡)이요 열째는 대내마손(大奈麻飡)이요 열한번째는 내마(奈麻)요 열줄째는 대사(大舍)요 열셋째는 사지(舍知)요 열넷째는 길사(吉士)요 열다섯째는 대오(大烏)요 열여섯째는 소오(小烏)요 열일곱째는 조사(造士)다.
○ 13년 정유(丁酉) 겨울에 고구려가 낙랑(樂浪)을 멸하니 낙랑인이 오천이 대방인(帶方人)과 함께 도망쳐오니 왕이 육부에 나누어서 살게하다.
○ 19년 임인(壬寅)에 이서국(伊西國)을 쳐서 멸하다「이해에 수로(首露)가 가락(駕洛)에 건국하니 영토가 東은 월당(月當)까지 南은 대마도(對馬島)까지이며 西는 가야(伽倻)까지 이르다. 신라 법흥왕 임자(壬子)에 나라를 받들어 신라에 항복하다.」
○ 34년 정사(丁巳) 왕께서 훙서(薨逝)하시다. 이에 앞서 왕께서 병드시어 신하에게 말씀하시기를 탈해는 나라의 척의(戚誼) 있는 사람이요 大臣으로 여러번 공을 세웠다. 나의 두아들은 그에게 따르지 못하고 또 선왕의 명령에 "아들과 사위를 가릴것이 없이 나이가 많고 어진사람으로써 왕위를 잇게 하라. 하셨으므로 내가 먼저 임금 되었으나 이번에는 마땅이 왕위를 전하여 선왕의 유훈을 잊지 말 것이다" 하셨으므로 탈해가 왕위에 올라 비(妃) 朴氏를 아효왕후(阿孝王后)로 봉하고 유리왕을 선릉(先陵) 영역내 묘좌(卯坐)에 장사하다.
○ 탈해왕 을축(乙丑)에 金城의 西쪽 시림(始林)에서 어린 아기를 얻다 삼국사기에 탈해왕 9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쪽 시림의 숲속에서 닭소리가 들리므로 표공(瓢公)을 보내어 보고 오게하니 금빛 작은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거늘 표공이 돌아와서 보고하니 왕이 사람을 보내 그 궤를 갖고 와서 보니 그 속에 아기가 있는데 얼굴이 준수하므로 왕이 기뻐하며 하늘이 나에게 아들을 주신것이다하여 드디어 길러서 아들을 삼고 알지(閼智)라 이름하고 금궤속에서 나왔다하여 金氏로 하여 성(姓)을 하고 닭의 아름다운 상서가 있었다해서 시림(始林)을 계림(鷄林)으로 고치고 국호(國號)를 삼았다. 알지(閼智)의 7세손인 미추(味鄒)때에 와서 석씨에게 선위를 받아 왕이 되다. 석탈해왕(昔脫解王)은 23년 庚辰팔월에 훙(薨)하니 국도 북쪽 표암(瓢岩)에 장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