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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시간 09:00 - 18:00파사왕
시조 및 신라선원 > 파사왕파사왕은 유리왕의 둘째 아들이니 처음에는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이라 하다 왕위에 계신지 32년이요 수(壽)는? 능은 선릉 영역 안 묘좌(卯坐)니 이때와서 오릉(五陵)이라 하였다. 妃는 사성왕후(史省王后) 김씨요 계비(繼妃)는 석씨니 능은 동산 子坐에 있다.
○ 원년 신사(辛巳)에 비 김씨를 봉해 사성왕후(史省王后)를 삼고 계비는 석씨다. 왕께서 비용을 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하여 왕위에 오르시사 주군(州郡)을 순시하여 창고의 곡식을 내어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주고 죄수를 불쌍이 여겨 두가지 죄를 지은자가 아니면 모두 놓아 주었다.
○ 2년 임오(壬午)에 명령을 내리시기를 "지금 창고가 텅비었고 무기가 무디어서 쓰지 못하게 되었는데 만약에 수한재(水旱災)나 변방에 대적이 침입한다면 어떻게 방비하겠느냐 마땅히 유사(有司)로 하여금 농상(農桑)을 장려하고 군사와 무기를 단련하여 불시의 근심을 막게 하라 하셨다 친히 시조묘(始祖廟)에 제사 하시다."
○ 4년 갑신(甲申)에 크게 풍년이 들었다 이때에 정치가 간소(簡素)하고 교화(敎化)가 널리 이루어져서 여러 가지 상서(祥瑞)가 나타나서 고타현(古陀縣)에서 푸른소(淸宇)를 헌납(獻納)하였고 남신현(南新縣)에 보리 이삭이 둘씩 달려서 백곡(百穀)이 풍성하여 길가는 사람이 양식을 갖고 다지지 않더라.
○ 7년 정해(丁亥) 7월에 명령을 내리기를 "우리나라가 서쪽에는 백제와 이웃하고 남쪽은 가야와 접했으나 덕(德)으로 이웃나라를 회유(懷柔)하지 못하고 위력(威力)으로 두렵게 하지 못하니 마땅히 성벽이나 잘 수축(修築)하라 하시고 가소(加召)~거창(居昌)과 마두(馬頭)~청도(淸道)의 두성을 축조하다."
○ 10년 경인(庚寅)에 사신(使臣) 10인을 각주군(各州郡)에 파견(派遣)하여 직책을 게을리 하여 전야(田野)를 황폐하게 한자를 적발하여 벼슬을 삭탈하게 하다.
○ 14년 甲午 2월에 가야병(伽倻兵)이 마두성(馬頭城)을 포위하므로 아손길원(阿飡吉元)을 보내어 기병으로 공격하여 물리치고 8월에 알천(閼川)에서 군사를 열병(閱兵) 하였다.
○ 16년 丙申에 가야가 남쪽 국경을 침범하니 성주 장세(城主 長世)가 항거하여 싸우다가 죽으니 왕이 크게 노하사 친히 용사 5000을 이끌고 싸워서 무찌르고 많은 적을 포로하니 가야왕이 사신을 보내어 사과하므로 진격을 중지하다. 「首露王의 동생 5人이 五伽倻王이 되었는데 곧지금의 함안 고령 합천 성주 함양이다.」
○ 21년 辛丑에 金城의 동남에 새로 정을 쌓고 월성(月城)이라 이름하여 왕께서 이사(移徙)하시다. 실직(悉直)과 압독(押督) 두나가 항복하였고 음즙벌국(音汁伐國)이 실직곡국(悉直谷國)과 국경을 다투다가 왕이 와서 결정하기를 청하니 왕께서 수로(首露)가 나이 많고 지혜가 있다하여 불러서 물으시니 수로가 즉석에서 결정하여 그 땅을 음즙벌곡(音汁伐國)에게 귀속 지키다.
○ 12년 壬寅에 음즙벌곡(音汁伐國)이 와서 항복하다.
○ 14년 甲辰에 실직국(悉直國)이 배반하거늘 쳐서 평정하고 그 백성을 남쪽 변방에 옮긴다.
○ 25년 乙巳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다.
○ 26년 丙午에 왕께서 압독(押督)에 행차하사 가난한 백성을 구휼(救恤)하시다.
○ 28년 戊申 오월에 큰물이 나서 백성이 굶주리므로 사신을 十道에 보내 창고를 열고 곡식을 내어 백성을 구제하고 비지(比只)와 다벌(多伐)과 초팔(草八)등 세나라를 쳐서 합병하다.
○ 29년 己酉에 황충(蝗蟲)이 곡식을 해치거늘 왕이 두루 산천에 기도하고 제사지내니 황충이 없어지고 풍년이 들었다.
○ 31년 辛亥에 백제의 내기군(奈己郡)을 뺏었다.
○ 32년 壬子10월에 왕이 훙(薨)하시니 태자 지마(太子 祗摩)가 왕위에 올라 파사왕을 先陵의 영역 묘좌에 장사하니 이를 오능(五陵)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