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상담센터
항상 친절히 안내하겠습니다.
010-5035-7567
상담시간 09:00 - 18:00지마왕
시조 및 신라선원 > 지마왕
지마왕기(祗摩王紀)

지마왕릉( 경북 경주시 배리)
○ 원년 癸丑에 김씨를 봉해 애례왕후(愛禮王後)를 삼고 시조묘에 제사하시다. 이 해 봄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문안하다. 영창(永昌)으로 이손(伊飡)을 옥권(玉權)으로 파진손(波珍飡)을 삼다.
○ 2년 甲寅에 홍수가 범람하여 옥사가 물에 잠기매 죄수들을 염려하여 경범을 용서하고 석방하다.
○ 3년 乙卯 2월에 가야가 남변(南邊)을 침범하니 7월에 왕이 친히 보병(步兵)과 기병(騎兵)을 이끌고 황산하(黃山河)를 건너니 가야의 복병이 여러 겹으로 포위 하거늘 왕이 힘을 다하여 쳐부수고 포위를 뚫고 물러갔으나 이로부터 두 나라의 다툼이 쉬지 않았다.
○ 4년 丙辰에 장수를 보내 가야를 침노할세 친히 정병 일만을 이끌고 뒤따라가니 가야가 城을 굳게 지켜 항거하거늘 마침 장맛비를 만서 회군하다.
○ 9년 辛酉에 익종(翌宗)으로 이손(伊飡)을 삼다. 이 해에 왜병(倭兵)이 침노해 오다.
○ 10년 壬戌에 큰 바람이 동쪽에서 큰 바람이 불어와서 나무를 꺽고 기와를 날리니 도성(都城) 사람들이 유언비어를 터트려 「왜병이 침입한다」하거늘 이손(伊飡) 익종(翌宗)에게 명하여 효유(曉諭)하여 그치게 하다.
○ 11년 癸亥에 왜(倭)와 화친하다.
○ 13년 乙丑 봄에 말갈(靺鞨)이 북경에 침입하여 아전과 백성을 죽이고 약탈하고 가을에 또 대령책(大領柵)을 습격하여 이하(泥河)를 지내거늘 왕이 백제에 구원을 청하니 백제왕이 다섯 장수를 보내어 구원하여 말갈을 물리치다. 「말갈(靺鞨)은 옛날 숙신씨의 끼친 종족으로 그 후손이 여진과 金과 淸이 되었다.
○ 22년 甲戌 팔월에 왕이 훙(薨)하시니 아들이 없는지라 유리왕의 맏아들 일성(逸聖)이 왕위에 올라 지마왕을 국도 남쪽 10리 포석정 건지동의 乙坐에 장사하시다. ☆미추왕기(味鄒王己)를 상고하건대 아버지의 諱는 구도(九道)니 일길손(一吉飡)으로 갈문왕(葛文王)을 추봉(追封)하였고 정비(正妃)는 朴氏니 지마왕(祗摩王)의 아들 이비(二妃)의 따님이라 하였으니 지마왕이 아들이 있었으나 왕위를 이을만한 사람이 없으므로 어진 사람을 택하여 왕위를 잇게 한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