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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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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마왕기(祗摩王紀)




지마왕릉( 경북 경주시 배리)


지마왕(祗摩王)은 파사왕(破娑王)의 적자시니 처음에는 지마이사금(祗摩尼師今) 또는 지미(祗味)라고도 하였다.이라 하니 왕위에 계시기를 22년이요 ? 은 국도 남쪽 10리의 포석정 건지동 乙坐이며 왕비는 김씨니 애례왕후(愛禮王後)시며 능은 寧山 子坐이다.

원년 癸丑에 김씨를 봉해 애례왕후(愛禮王後)를 삼고 시조묘에 제사하시다. 이 해 봄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문안하다. 영창(永昌)으로 이손(伊飡)을 옥권(玉權)으로 파진손(波珍飡)을 삼다.

2甲寅에 홍수가 범람하여 옥사가 물에 잠기매 죄수들을 염려하여 경범을 용서하고 석방하다.

3乙卯 2월에 가야가 남변(南邊)을 침범하니 7월에 왕이 친히 보병(步兵)과 기병(騎兵)을 이끌고 황산하(黃山河)를 건너니 가야의 복병이 여러 겹으로 포위 하거늘 왕이 힘을 다하여 쳐부수고 포위를 뚫고 물러갔으나 이로부터 두 나라의 다툼이 쉬지 않았다.

4丙辰에 장수를 보내 가야를 침노할세 친히 정병 일만을 이끌고 뒤따라가니 가야가 을 굳게 지켜 항거하거늘 마침 장맛비를 만서 회군하다.

9辛酉에 익종(翌宗)으로 이손(伊飡)을 삼다. 이 해에 왜병(倭兵)이 침노해 오다.

10壬戌에 큰 바람이 동쪽에서 큰 바람이 불어와서 나무를 꺽고 기와를 날리니 도성(都城) 사람들이 유언비어를 터트려 왜병이 침입한다하거늘 이손(伊飡) 익종(翌宗)에게 명하여 효유(曉諭)하여 그치게 하다.

11癸亥에 왜()와 화친하다.

13乙丑 봄에 말갈(靺鞨)이 북경에 침입하여 아전과 백성을 죽이고 약탈하고 가을에 또 대령책(大領柵)을 습격하여 이하(泥河)를 지내거늘 왕이 백제에 구원을 청하니 백제왕이 다섯 장수를 보내어 구원하여 말갈을 물리치다. 말갈(靺鞨)은 옛날 숙신씨의 끼친 종족으로 그 후손이 여진과 이 되었다.

22甲戌 팔월에 왕이 훙()하시니 아들이 없는지라 유리왕의 맏아들 일성(逸聖)이 왕위에 올라 지마왕을 국도 남쪽 10리 포석정 건지동의 乙坐에 장사하시다. 미추왕기(味鄒王己)를 상고하건대 아버지의 는 구도(九道)니 일길손(一吉飡)으로 갈문왕(葛文王)을 추봉(追封)하였고 정비(正妃)朴氏니 지마왕(祗摩王)의 아들 이비(二妃)의 따님이라 하였으니 지마왕이 아들이 있었으나 왕위를 이을만한 사람이 없으므로 어진 사람을 택하여 왕위를 잇게 한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