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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및 신라선원 > 경명왕경명왕기(景明王紀)
경명왕은 신덕왕의 태자이니 휘는 승영(昇英)이요 왕위에 계신지 7년이다 능은 아달라왕릉 안의 卯坐다. 비는 석씨니 능은 서화산 子坐다.
○ 원년 戊寅에 석씨를 정하여 왕비를 삼고 아우 위응(魏膺)으로 대등대아손(大等大阿飡)을 삼고 유염(裕廉)으로 시중(侍中)을 삼다. 팔공자를 봉하니 맏분은 밀성대군 휘 언침( 密城大君 諱 彦忱)이시고 다음 분은 고양대군 휘 언성(高揚大君 諱 彦成)이시고 셋째분은 속함대군 휘 언신(速咸大君 諱 彦信)이시고 넷째분은 죽성대군 휘 언립(竹城大君 諱 彦立)이시고 다섯째분은 사벌대군 휘 언창(沙伐大君 諱 彦昌)이시고 여섯째분은 완산대군 휘 언화(完山大君 諱 彦華)이시고 일곱째분은 강남대군 휘 언지(江南大君 諱 彦智)이시고 열덟째분은 월성대군 휘 언의(月城大君 諱 彦儀)시다. 일길손 현승(一吉飡 玄昇)이 반역을 꾀하거늘 참수하다 이해에 왕건이 고려를 세우다.
○ 3년 庚辰 정월에 고려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맺다. 10월에 견훤이 대량협과 구사 두고을을 함락시키고 진례군까지 침입하니 왕이 아손(阿飡) 김율을 고려에 보내 구원을 청하니 견원이 듣고 물러가다. 이때에 견훤이 자주 침입하므로 고려가 장수 박수경을 보내서 왕경(王京)을 수호하게 하였다.
○ 4년 辛巳 정월에 김율을 고려에 사신 보내니 고려왕이 묻거늘 「신라에 장륙상(丈六像 )과 구층탑(九層塔)과 성대(聖帶)가 있는데 이것을 삼보(三寶)라 하였는데 성대도 아직 있는가?」 김률이 대답을 못하고 돌아와서 왕께 고(告)하니 여러 신하에게 물어보아 알지 못했는데 그 때 황룡사(皇龍寺)의 90여세 되는 늙은 중이 대답하거늘 「이것은 진평왕께서 쓰시던 것으로 지금 남고(南庫)에 수장되어 있으나 둘레가 심히 길어서 보통사람은 맬수 없습니다.」하였다.
○ 2월에 말갈(靺鞨)의 별부(別部) 달고(達姑)의 무리 170人이 침입하여 삭정군(朔庭君)을 경유하는지라 고려장군 견권이 쳐서 물리치니 왕이 고려에 사신을 보내 사례하시다.
○ 7년 갑신 팔월에 왕이 훙(薨)하시니 아우 위응이 왕위에 올라 경명왕을 신덕왕릉 안 묘좌에 장사하고 시호(諡號)를 경명이라 올리니 이것을 삼릉(三稜-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이라 한다. 고려에 국상을 고하니 고려왕이 애도의 뜻을 표하고 사신을 보내어 조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