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성박씨
“ 밀성박씨 충헌공파의 시조 및 본관 ”
박씨는 조상을 달리하는 본관이 단 한 본도 끼어 있지 않고 오직 박혁거세의 순수한 혈족을 이어온 씨족이라 할 수 있다.
박씨의 본관은 여러 성씨 중 시조 또는 중시조가 확실하게 밝혀져 있고 또 후손이 현존하는 확실한 본관 35본만 기록했다. 문헌에 의하면 우리나라 씨족 가운데 외래 귀화 씨족이 많지만 박씨는 조상을 달리하는 본관이 단 한 본도 끼어 있지 않고 오직 박혁거세의 순수한 혈족을 이어온 씨족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박씨는 박혁거세를 시조로 받들고 모두가 같은 자손임을 자랑으로 여기며 신라오릉보존회(新羅五陵保存會)를 구성하여 서로 단결하고 있다.
〈삼국유사〉나〈삼국사기〉에 박혁거세 탄생의 대하여 전하는 일화가 있다.
신라 이전에 원시부족 사회인 사로(斯虜) 6촌의 촌장 금산(金山)의 가리촌장(加利村長), 지타(祗沱:배씨의 원조), 명활산(明活山)고야촌장(高耶村長), 설거백(薛居伯:설씨 시조), 호진(虎珍) 무산(茂山)의 대수촌장(大樹村長) 구례마(俱禮馬:손씨의 원조), 알천(閼川)의 양산촌장(楊山村長), 알평(謁平:이씨의 원조), 자산(觜山)의 진지촌장(珍支村長), 지백호(智伯虎:정씨의 원조), 돌산(突山)의 고허촌장(高墟村長), 소벌도리(蘇伐都利:최씨의 원조) 등이 BC69년 전한(前漢) 지절(地節) 원년 3월 1일에 알천(謁川) 안상(岸上)에 모여 나라를 맡아 백성을 다스릴 군장(君長)을 추대 할 것을 의논하고 하늘에 제례를 드리던 중 홀연히 양산(楊山:경주시 남산)밑에 있는 나정(蘿井:담쟁이덩굴이 우거진 우물) 수풀 사이에 무지개 같은 성스러운 기운이 뻗치고 용마(龍馬) 한 필이 소리를 지르고 꿇어 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 가보니 알 같기도 하고 박(표:瓢) 같기도 한 포가 있어 기이하게 여겨 헤쳐 보니 그 속에서 남자아이가 나왔다. 모두 갸륵하게 여기고 동천(東泉)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오고 새와 짐승도 춤을 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일월이 청명하였다.
이 아기는 소벌도리(최씨의 원조)에 의해 길러졌으며 박혁거세가 다스리기 시작한 서라벌에는 해마다 풍년이 들었고 모든 것이 풍족하여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노래하였다.
왕이 즉위한 지 5년째 되는 해에 왕비를 맞았다. 왕비의 이름은 알령이었다. 알령 또한 하늘에서 내려 준 박혁거세의 배필이었다. 바로 박혁거세가 세상에 태어난 무렵에 양산 마을의 알령이라는 우물가에 닭처럼 생긴 용이 구름을 타고 내려왔다.
용의 왼쪽 옆구리에는 여자 아이가 끼어있었다. 어느 할머니가 달려가서 그 아기를 받아다 키웠다. 한데, 아기의 입술이 닭의 부리처럼 쑥 나와 있어 할머니는 이 아기를 안고 북쪽에 있는 샘을 찾아가 그 입을 씻어 주었다. 그러자 아기의 입술이 들어가서 아주 예쁘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 여자 아기의 이름을 우물 이름을 따서 "알령"이라 지어주었다. 이 여자 아기가 자라서 왕비가 된 것이다.
뒷날 BC57년 전한(前漢) 효선제(孝宣帝) 오봉원년(五鳳元年) 4월 병진일(丙辰) 혹은 정월 15일에 즉위하여 박혁거세 왕이라 하고 작위의 명호(名號)를 거서간(居西干)이라 하였으며 국호를 서라벌이라 하였으니 박과 같은 알에서 나왔다하여 성을 박(朴)이라 하였고 밝게 비춰준다고 하여 불구내라고 하다가 뒤에“혁(赫)”빛난다는 뜻과 "거세(居世)" 세상에 있다는 뜻으로 혁거세라 하였던 것이다.
그 후 국호가 신라로 고쳐진 것은 지증왕 때이다.
신라왕국 992년 동안 왕실의 임금이 박(朴), 석(昔), 김(金) 3성에 의해 교체 되었는데 그중 박씨 왕은 시조왕 혁거세를 비롯하여 2대 남해왕, 3대 유리왕, 5대 파사왕, 6대 지마왕, 7대 일성왕,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55대 경애왕 등 열 사람이다.
박씨 세계가 갈려나간 것을 자세히 참고로 한다면 먼 옛날부터 대를 이어온 박혁거세의 증손인 파사왕의 후손으로 강릉(江陵), 면천(沔川), 영해(寧海)와 비안(比安), 삼척(三陟), 우봉(牛峰), 이산(이山), 해주(海州)등으로 8개 본관이 갈려 나갔고 그 후 54대 경명왕의 아홉 아들 중 여덟 아들이 대군으로 봉해져 각각 본관을 달리 하였다.
〔1〕큰아들 밀성대군파는 밀양(密陽)박씨를 비롯하여 구산(龜山), 나주(羅州), 문의(文義), 반남(潘南), 영암(靈巖), 은풍(殷豊), 인제(麟蹄), 창원(昌原), 태안(泰安), 태인(泰仁) 박씨가 있고
〔2〕2자 고양대군파는 고령(高靈)박씨
〔3〕3자 속함대군파는 군위(軍威), 함양(咸陽) 박씨
〔4〕4자 죽성대군파는 고성(固城), 음성(陰城), 죽산(竹山)박씨
〔5〕5자 사벌대군파는 상산(尙山), 상주(尙州), 충주(忠州)박씨
〔6〕6자 완산대군파는 무안(務安), 전주(全州)박씨
〔7〕7자 강남대군파는 순천(順天), 춘천(春川)박씨
〔8〕8자 월성대군파는 경주(慶州)박씨
〔9〕9자 국상공파는 울산(蔚山)박씨 로 각 대군계에서 또 26본으로 갈렸으며 그밖에 중시조는 확실하지만 윗대가 확실하지 않은 본관이 광주(廣州), 노성(魯城), 비안(比安), 순창(淳昌), 음성(陰城), 진원(珍原), 평주(平州)박씨 등 7본이 있다.
그리고 이산, 우봉, 해주, 박씨와 경애왕의 후손으로 계림대군파(鷄林大君派)가 있다고 하나 이 책에는 기록이 없다.
1985년 조사에서 815.151 가구 인구 3.435.640으로 274성 중 3위였다.